w. 뷔운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병을 앓고있었다. 좋아하는 상대를 보거나 좋아함으로 인해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낄 때면 심장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하고 쏟아질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나는 처음 꽃을 뱉었다.


*하나하키병: 짝사랑을 하게되어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털어놓지 못하면 꽃을 뱉는 병


아버지의 사업 문제로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까지도 워낙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 덕에 친구가 몇 없었다. 그래서 별 어려움없이 서울에 올라왔고 혼자 하루하루를 지내다 체육시간에 널 처음 봤다.

선생님도 내가 몸이 약한 것을 익히 알고있어 심한 운동은 시키지 않으셨고 그 때도 난 역시 벤치에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피고있는 연두빛의 나뭇잎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나무들 사이로 교문을 나가는 1학년들이 보였다.

나는 전학을 와서 1학년 과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수업하는지 조차 몰랐으나 학기초 전학오자마자 나에게 다가왔던 친구 한명이 와서 내게 살갑게 말을 했다. 이름이 박지민이랬나,

" 1학년땐 문학 수업하러 밖에 나가서 시 짓더라. "
" ..시? "
" 응. 나도 1학년때 전학와서 적응 안됐었는데 1학년 국어전담쌤이 매년 그랬다고 하더라고. 뭐 어떡해. 나가서 하늘 보고 글자 몇 자 쓰다오는거지. "

지민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체육선생님의 부름에 운동장으로 뛰어갔고 나는 그 1학년 중 마지막 아이를 눈으로 쫓고있었다.

"..길다."

참으로 다리가 긴 아이였다. 그 아이 주변에는 여자아이들이 많았고 얼굴이 보이지않는데도 분명 얼굴이 남들보다 월등히 잘생겼을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그 때, 운명적으로 네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날 똑바로 쳐다봤다. 순간 숨이 멎는듯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몇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더라, 두근거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잘생긴 사람이 날 봐서 놀라서 그러는거야. 사람이 어떻게 한눈에 보고 반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남자앤데, 그럴리가 없지. 속으로 부정하다가 수업이 끝남을 울리는 종이 쳤던 것 같다.

그 후 수요일 3교시 체육시간만 되면 나도 모르게 교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1학년 그 아이가 있는 그 반과 겹치는 시간이 그 시간 밖에 없었다. 매주 그 시간만 되면 그 반은 매번 교문 밖으로 나섰는데 어느새인가부터 시 짓는 수업이 끝났는지 종이 칠 때까지 교문을 바라봐도 교문 밖을 나서는 반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라도 그 반이 1학년 몇반인지 묻고 싶었으나 전학 온 지라 1학년에도 2학년에도 인맥이 없어 아는 친구라고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박지민 밖에 없었다.


따뜻했던 봄이 지나 푸르른 여름이 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운동회였다. 몸이 약한 나는 어떤 종목도 나가지못하지만 괜히 반티를 입고 같은 벤치에 앉아있었다. 다 같은 색의 체육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1학년을 보고있자니 체육시간의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것 같았다. 일부러 눈을 찌푸리고 그 아이를 몰래 찾았지만 그 때도 그 아이는 보이지않았다.

운동회가 끝나고 모두 집에 갈 준비를 하고있었고 전 학년이 서있는 운동장엔 교장의 지루한 연설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무심히 주위를 둘러보던 찰나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두세번 밖에 보지못했던 너였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색의 체육복의 1학년 중에 너만 유독 눈에 띄었다.

그 때 운명처럼 네가 또 뒤를 돌아 날 쳐다봤다. 또다시 심장이 멎는듯한 두근거림이었다. 그 날의 너는 나와 눈을 맞춤으로 끝나지 않았다. 길고 지루했던 연설이 끝나자마자 망설임없이 나에게 다가와 이름을 물었다.

" ..2학년 김태형이야."
" 전 전정국이요. 선배 되게 잘생겼네요."

눈을 맞춘 것 외에는 한 것이 무엇도 없었는데 다가와 이름을 묻고 처음 본 상대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꺼내는 네가 나와 달라서 신기했었다. 잘 부탁드린다며 손을 흔들면서 웃으며 걸어가는 널 보며 나도 모르는 새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있었다.


**


"웃는 거 예뻐요, 형"

그 때 그 날 서로의 이름을 알고 너는 어떻게 알았는지 쉬는시간마다 우리 반을 찾아와 짝의 자리를 10분 내내 차지하고있었다. 종이 치고 나서야 형 이따봐요를 외치며 손을 흔들며 자신의 반으로 나섰고 그때마다 난 손을 흔들 뿐이었다. 매 쉬는시간마다 너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수업시간 마저도 너의 생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다른 생각을 하려 운동장을 내다보아도 혹시 너의 반일까 나도 모르게 너의 얼굴을 찾았다.


네가 문학시간에 교문을 나서지 않은 것처럼 네가 어느 날부터 쉬는시간마다 우리 반에 찾아오지않았다. 네가 매번 찾아온 터라 너의 반도 물어보지않았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한 후회를 했다. 물어볼걸.

너의 얼굴을 보는 횟수가 갑자기 줄어들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너와 나는 아무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결국 한명뿐인 친구에게 물어봐버렸다. 성격이 좋아 인맥이 넓었던 지민이는 내가 몇달동안 알지 못했던 너의 반, 심지어 번호까지 알아 나에게 말해주었고 독감에 걸려 학교에 나오지 못 하고있다고 말해줬다. 

하교 후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네 걱정을 할까, 내가 뭐라고 네 생각이 날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말도 안되는 결론이 나와버렸고 난 그 결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을 인정해버린 순간 심장이 멎을만큼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잊고있던 내 병도 다시 생각났다.

결론은 하나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내가 널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널 찾았었구나.

그리고 난 붉은빛의 꽃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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